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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골짜기에 아늑한 마을 외산 가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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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리_1
▲가덕리 마을회관 앞에서 바라본 풍경. 한 가운데 보이는 큰 산이 이 마을의 끝이다.


월명산 움푹 파인 곳에 가장골(가리점)과 손대, 손사마을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이 외산면 가덕리이다. 반교리 안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원래 홍산문화권에 속했다.

월명산 고개를 넘어서면 보령시 미산면으로 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은 워낙에 험해서 뱁제고개라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이 형성된 것은 1700년대 쯤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파평윤씨들이 정착해 지금까지 촌락을 이루고 있다. 월명산 자락은 파평윤씨 가문 소유가 많다.

현재는 이 가문의 선산 자락에 밤나무를 100ha 정도 재배하고 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50여호가 거주했던 마을이다. 지금도 가구 수는 크게 줄지는 않았다.

마을은 월명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만수천까지 이어져 간다. 만수천으로 유입되는 지천 중 하나다. 산자락에서 시작돼 한 바퀴를 돌아 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내려가는 지천은 수량은 적은 편이지만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마을은 이 지천을 사이에 두고 논이 펼쳐져 있다. 물이 마르지 않으면서 수경재배도 가능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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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동쪽이다. 청룡이 낮게 깔려 있어 낮엔 부지런할 수 있다. 서쪽 백호는 높아 자손이 번창하는 요건을 가진 마을이다.


가덕리는 본래 산골이다. 조선 태종 때를 그 기원으로 하고 있을 정도로 산세가 험했다. 그래서인지 산자락 밑에 밭이 잘 조성돼 있고 콩과 깨 같은 밭작물이 두런두런 심겨져 있다.

가리점골이라고 불리던 마을은 지금 가장골이라 부르고 있다. 원래 가덕이라고 칭했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나무바가지를 만드는 곳이 있어서 가리점골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손대와 손사는 선비의 마을이기도 하다. 이 두 마을은 선비들이 낙향한 이유 따라 이름이 붙여졌는데, 손대는 사화에 몰린 한 선비가 대를 잇기 위해 이곳에 정착해 땅을 일구고 살았다고 한다. 손사는 겸손을 잃지 않는 선비가 처음 낙향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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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마을 한 가운데 심겨져 있는 고사리.


손대는 손님이 찾아오면 떠날 줄 모를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지역이다. 현재도 손대의 경치는 숨은 자원이다. 손사는 겨울나기가 어려운 지역이라고 한다. 외산지역은 워낙에 바람이 많은 곳인데 손사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는 골짜기기이 때문이다.

손대와 손사는 큰골과 백제골이라고도 이름이 붙여졌는데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명칭은 아닌 듯하다. 주민들도 그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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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밭. 요즘 시골에서는 느티나무 밭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자산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한다. 사진 우측으로 살며시 보이는 오솔길이 굽어져 정겹다.

이 마을의 가장 큰 숙원사업은 도로다. 반교리와 함께 사용하는 폭 3~4m 가량의 농로를 휘 돌아서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정도가 고작이다. 차량이 두 대가 마주 오면 비켜주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마을주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을 한 바퀴를 일방통행처럼 이용하고 있다.



아름다운 골짜기에 아늑한 마을 외산 가덕리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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