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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낙지, 교육의 요람 곡부 가곡1리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8-02-20 1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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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은산면 가곡1리.


초입에 ‘곡부마을’이라는 초석이 마을 방향을 가리킨다.

가곡리는 크게 가곡과 고부실, 아가벌로 나뉘고, 1리는 고부실이라 불린다.
고부실은 초막동, 아랫뜸, 아랫고부실, 참나무쟁이, 채빙골, 꼭두마리, 가안고개 등의 지명이 전해져 온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 책인 만산도비기(萬山圖祕記)에 ‘곡부(曲阜)에 매화낙지(梅花落地)형 양택 명당이 있다’며 ‘백자천손(百子千孫) 명공거경(名公巨卿)이 대대로 삼성팔현(三聖八賢)이 나올 자리’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 정감록에도 이곳을 십승지지(十勝之地 梅花落地)로 기록돼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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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가운데에 있는 축사. 소들이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애교스럽다.

실제로 남쪽에서 북향하는 매화봉 줄기가 마을을 양 팔로 감싸 안고 있는 지형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은 근대 이전에도 많은 인물이 났다고 한다.

이 마을에 들어왔던 이들 중에는 명당을 찾아서 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옥가실은 진주유씨가, 고부실은 기계유씨가 최초로 정착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두 마을 모두 함양 박씨와 청송 심씨, 연안 송씨가 차례로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가까운 마을이라고 해도 진주 유씨인지, 기계 유씨인지 여부는 더욱 조사해 봐야 할 사항이다.

옥가실에는 진주유씨 삼대묘가 있다.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유희택과 도총관을 지낸 아들 유전, 대제학을 지낸 유경손은 중종 19년부터 명종에 이르기까지 삼대가 모두 고위 공직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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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서당 건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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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서당에 남아있는 벽면 글귀. 서당의 하루 시간표가 나타나 있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일과에 오전 7시와 11시, 오후 2~4시, 오후 8시가 비어 있다. 꼭 밥을 먹는 시간과 오침을 하는 시간을 비워둔 듯 하다.

모든 일과는 밤10시나 돼야 끝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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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서당 안쪽에 남아 있는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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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의숙 터.

조선말기에는 이곳에 함양박씨들이 몰려들어 유교적 사상을 전승하는 서당을 세우기도 했는데, 아직도 사설교육기관인 신명의숙 터와 곡부서당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신명의숙은 독립운동가 이세영 등 10여명이 모여 유학과 신학문까지 두루 가르쳤다.
하지만, 일제가 부여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면서 문을 연지 3년 만인 1911년에 폐교됐다.

이 마을이 곡부인 이유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곡부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매화낙지의 영향으로 이주한 이들과 더불어 품격이 높은 이들로 거주하는 마을이라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30여년 전까지 운영됐었던 곡부서당은 심하진 선생에 의해 난석서실(蘭石書室)로 운영돼다가 곡부서실, 곡부서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과 김신호 전 성균관 한림원장 등이 이 서당 출신이라고 한다.



매화낙지, 교육의 요람 곡부 가곡1리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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