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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 마을 규암면 진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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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매와 부산서원


진변리는 규암면에서 동쪽으로 금강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부산(浮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은 한 여름에도 강바람이 불어와서 무더기로 하얗게 피어있는 들꽃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금강의 물결과 더불어 나지막한 언덕을 중심으로 곳곳에 자리잡은 집들은 입구마다 꽃을 가지런히 심어놓았고, 골목 안쪽에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주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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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꽃이 강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조선 초기부터 제주고씨와 완산이씨, 영월신씨 등이 정책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진변의 뜻은 나루 진(津)에 가장자리 변(邊)을 쓴, 나루터라는 얘기다. 백제대교가 생기기 이전에 사람들은 진변리를 통해서 부여읍을 건너다녔고, 버스도 나룻배에 실려 다니곤 했다. 부교가 생긴 이후에 나루의 기능이 점차 사라졌으며 1968년에 백제대교가 완성되자 나룻터를 이용하는 이들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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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아래로 자리한 주택들.


[백강 이경여의 동매]
마을회관 옆에는 부여동매(扶餘冬梅)라는 오래된 비석과 한옥집, 높다란 곳에 위치한 동헌이 있다.
동매는 매화나무를 가리킨다.

백강 이경여 선생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던 길에 가져왔는데, 세 그루 중에서 모두 죽었고 그 중 하나의 나무에서 새로운 싹이 올라와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데 수령이 500년이 넘는다고 전해진다.

부산서원은 숙종 45년에 김집과 이경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우국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 조선 말기에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패 정책을 펴면서 사라졌다가 1970년대에 다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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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서원


진변리는 부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여러 갈래 있었다. 강변 등산로, 마을 초입 등산로, 북쪽 방면의 등산로로 나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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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변리 마을 안길 모습. 옛 모습의 집들이 줄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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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변리 마을회관 전경.


부산에는 백강 이경여의 북벌론에 대한 효종의 답을 기록해 놓은 대재각이 환문암지 자리에 있다. 대재각은 이경여가 병자호란의 설욕을 딛고 북벌을 주장하는 상소에 대해 효종이 답한 것을 이경여의 손자인 이이명이 돌에 요약해 ‘지통재심일모도원(至痛在心 日慕途遠)’라고 적었다고 한다.

그 뜻은 ‘(병자호란의 치욕에 대한) 아픔이 마음에 남아 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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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재각에 있는 비석.


마을에는 이 밖에도 백강산제당과 진변리느티나무, 진변정려, 청룡사지 등의 고적이 있다.



나루터 마을 규암면 진변리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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