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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철폐령 후 복원된, 부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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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철폐령 후 복원된, 부산서원

부여 규암면 진변리에 위치한 부산서원은 조선 인조·효종년간에

학계와 정계에서 크게 활용한 신독재 김집과 백강 이경여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서원은 1719년(숙종 45)에 이 지역 유림들의 공론에 의해 창건됐다.

본 서원은 창건된 바로 그 해에 국왕으로부터 부산서원이라 사액을 받았다.


이 서원에 배향된 김집과 이경여는 학문과 도덕은 물론, 당시 17세기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함에 있어 지도적 위치에 있던 인물들이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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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재 김집이 부산서원에 배향된 직접적 계기는 그가 일찍이 부여현감을 역임한 인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는 읍치를 잘하여 교화가 두루 미치게 함으로써 읍에서 쟁송이 그쳤고 그 자신은 날마다 읍중의 자제와 더불어 강론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후일 부여의 사민들이 송덕비를 세운 바도 있다.


백강 이경여는 전주 이씨인데, 전주 이씨는 부여의 오래된 성씨 중 하나인데 부여의 대표적인 사족을 언급할 때 흔히 '항동서리'라 해 동쪽의 황씨(창원황씨)와 서쪽의 이씨(전주이씨)라 한 것에도 알 수 있다.


이경여는 일찍이 문과로 출사해 영의정까지 올랐으나, 말년에는 부여로 낙향해 여생을 보내 향인이 그 덕행을 추모해 부산서원에 배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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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원은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수 됐으나 19세말 대원군의 서원철폐 정책이 강행될 때 훼철됐다. 이후 1970년 중반 부산서원의 복설운동이 시작됐다.

1974년 부여·논산·공주·청양 및 서울 등 각 지역의 유림들의 부산서원 복설 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이듬해 유림들의 성금과 군비 보조로 삼문을 축조하고 설단했다. 1977년 10월에는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던 충의사 건물을 본전 건물로 이건하리고 결졍해 같은해 12월 도비와 군비, 그리고 후손측의 부담으로 본전의 건축 공사를 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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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동매는 1984년도에 문화재로 지정된 부여 동매다. 일본인들까지 감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며 '조선의 동매'라고 적힌 돌비석을 세웠다는 부여 동매. 매화는 아름다운 조선의 선비정신을 상징하고 오랫동안 사랑 받아왔다.



부여 동매는 백강 이경여 선생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 올 때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3그루였으나 2그루는 고목이 돼 죽었고, 한 그루마저도 일제말기에 불에 타 죽었으나 그 후 죽은 나무 뿌리에서 싹이 나 자란것이 현재의 동매다.



   


서원철폐령 후 복원된, 부산서원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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