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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기만 하면 나쁜 일이 사라지는 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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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림로 준공 기념비


부여에는 넘어가기만 하면 나쁜 일이 모두 사라진다는 전설이 있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를 찾아본 사람만이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지금은 잘 닦인 도로로 인해 인적이 뜸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이 고개를 넘지 않으면 무려 10km를 돌아가야 했다.

이렇게 나쁜 일들을 없앨 수 있고, 지역민들의 고단함을 줄여줬던 이곳은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곳이됐다.

전설의 고개는 바로 충화면과 장암면을 잇고 있는 덕림(德林)고개다. 지방도 723호인 이 고개는 전설을 뒷받침 하는 놀라운 사실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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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풍원군 조현명의 묘. 뒷 편에 있는 묘가 조현명의 묘다. 좌우에 무인상이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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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명 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개정상에는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풍원군 조현명의 묘가 있다.

조현명은 숙종 16년부터 영조 28년까지 살며 경상도 관찰사와 좌의정,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어린 영조를 지킨 인물이며, 남인과 서인 간의 파벌싸움으로 발생됐던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무인이기도 했다.

특히, 균역법 제정과 민생을 살피는 경세가였으며, 당리당략을 넘어 갈등을 해소하는데 앞장섰는데, 어사였던 박문수와 김재로, 송인영 등과 친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그가 왜 덕림고개에 묻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선녀가 비단을 짜는 형세라는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의 명당 혈자리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 옥녀직금형의 덕림고개는 호서지방의 8대 명당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안팎으로 청룡과 백호가 감싸고 있는 것이 훤히 보일 정도다. 넓은 구룡평야와 규암, 부여읍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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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명의 묘소에서 바라본 전경. 저 멀리 규암면 반산저수지 앞 아파트까지 보이고, 우측 소나무 뒤로 부여읍 시가지가 보인다.


덕림고개는 백제의 전설까지 전해오는 곳이다. 이 고개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하던 당시에 백성들과 장병들이 서천군 한산면 주류성으로 철수했던 통로였다는데, 이 정상을 넘어 후퇴하던 백제 부흥군들은 불타는 사비성을 바라보며 한을 품었던 충절의 길이라고 한다. 조현명의 시호가 충효(忠孝)인 것과도 상당한 연관성을 보이고 있다.

남면 호암리에서 충화면 팔충리까지 총 4.79km인데, 1986년 새마을 운동 당시에 낙후지역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도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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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 기념비. 1986년 12월에 당시 관선이었던 정필모 군수의 이름이 보인다.


지금도 차량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지만, 이마저도 새마을운동이 한창 활발하던 1986년 3월에 많은 지역민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도로 폭을 갖췄고, 이 때문에 돌아가던 길을 단축할 수 있었다.

이 길을 내는데 토지가 9,500평이나 들었다는데 모두 사유지였으나 기부체납을 받아 2억1400만원을 들여 그해 12월에 완공됐다.

한 해의 시작이며 봄의 기운이 물씬 풍겨오는 이때에 덕림고개를 넘으며, 모든 근심을 떨쳐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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