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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사비시대의 숨결을 느끼며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나성

PHOTO 1 나성

낙화암과 백마강

PHOTO 2 낙화암과 백마강

능산리고분군

PHOTO 3 능산리고분군

정림사지 5층 석탑

PHOTO 4 정림사지 5층 석탑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던 사비를 아시나요. 바로 이곳 부여가 백제의 가장 찬란했던 문화를 간직했던 사비랍니다. 고구려에 쫓겨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급하게 도읍을 옮겼던 때와 달리 사비로의 천도는 신중하고 침착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나라 이름도 '남부여'로 바꿀 정도로 강한 의지가 담긴 새로운 왕국을 사비에 만들어졌습니다. 백제의 새로운 시작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 123년 간의 눈부심과 애처러움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 부여에서 사비시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봅니다.

부소산성과 관북리유적

부소산성 숲길

PHOTO 5 부소산성 숲길

백마강

PHOTO 6 백마강

백마강 유람선

PHOTO 7 백마강 유람선

1500여년 전인 서기 538년, 백제의 성왕은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여 고립된 웅진은 물자가 부족했고,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또한 웅진에 살고 있던 토착 귀족들에 의해 왕이 2명이나 살해당하는 등 귀족의 힘이 세서 왕권을 강화시키기 어려웠습니다. 사비는 산과 강을 활용하여 왕궁을 보호할 수 있고, 넓게 펼쳐진 벌판에 많은 백성들이 삶을 꾸릴 수 있었기에 지리적으로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부소산성 숲길 풍경

PHOTO 8 부소산성 숲길 풍경

부소산성 숲길 풍경

PHOTO 9 부소산성 숲길 풍경

부소산성 숲길 풍경

PHOTO 10 부소산성 숲길 풍경

부소산성 숲길 풍경

PHOTO 11 부소산성 사비길

부소산성 숲길 풍경

PHOTO 12 부소산성 사비길

백마강이 휘두르는 부소산에 쌓은 부소산성은 전쟁시에는 백제를 마지막까지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지만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정원)이었습니다. 부소산성은 당시에는 왕족만이 거닐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산책로입니다. 녹음이 짙은 상쾌한 길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곳곳에서 부여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정자와 누각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때면 느긋하게 쉬며 백제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삼충사

삼충사

PHOTO 13 삼충사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

PHOTO 14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

부소산성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삼충사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백제의 마지막 세 충신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바로 성충, 흥수, 계백입니다. 계백은 5천의 군대로 신라 김유신의 5만 군대와 싸우다 전사하였고, 성충과 흥수는 의자왕에게 미움을 받아가면서도 옳은 소리를 내다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즉위 이후 선정을 베풀고 신라로부터 한강 유역을 되찾으며 나라의 안정을 찾았던 의자왕이었는데 그 마지막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반월루

반월루

PHOTO 15 반월루

부여군수가 지은 현판 반월루기

PHOTO 16 부여군수가 지은 현판 반월루기

반월루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부여 풍경

PHOTO 17 반월루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부여 풍경

반월루에 오르니 부여시가지가 한눈에 담깁니다. 이 누각은 사비시대에 만들어 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1500여년 전에도 백제의 왕들은 산책을 하다 백성들을 내려다 보았겠죠. 평화로웠던 때에는 한없이 마음이 행복했을 것이며 혼란스러웠던 때에는 가슴이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낙화암

낙화암 정상 바위 위의 백화정

PHOTO 18 낙화암 정상 바위 위의 백화정

낙화암에서 바라보는 백마강

PHOTO 19 낙화암에서 바라보는 백마강

낙화암에서 바라보는 백마강

PHOTO 20 낙화암에서 바라보는 백마강

어쩌면 부소산성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가 낙화암일 것입니다. 적에게 쫓겨 더이상 갈 곳이 없어진 궁인들은 적에게 잡히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마음으로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40m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궁녀들의 모습을 떨어지는 꽃에 묘사하여 후대에 이곳을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타사암'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낙화암에서 보이는 백마강의 아름다운 풍경은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백제의 마지막 흥망성쇄를 지켜보았던 백마강은 그때처럼 지금도 여전히 덤덤하게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고란사

고란사

PHOTO 21 고란사

고란정

PHOTO 22 고란정

고란수

PHOTO 23 고란수

고란초

PHOTO 24 고란초

낙화암 아래쪽 백마강변에 작은 사찰이 있습니다. 낙화암에서 떨어진 백제 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고란사입니다. 이곳에는 아주 특별한 물이 있는데 옛날에는 임금님만 마셔서 어용수라 불리는 고란수가 바로 그것입니다. 백제의 왕들은 고란수를 마셔서 별다른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내려옵니다. 한 잔 마실 때마다 3년씩 어려지니 꼭 한 잔 씩만 마셔야 한다고 합니다. 옛날 어느 할아버지가 고란수를 연거푸 마시고 아기가 되어버렸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도 함께 내려오고 있습니다.

관북리유적

관북리유적

PHOTO 25 관북리유적

대형전각건물지

PHOTO 26 대형전각건물지

1호 석곽창고

PHOTO 27 1호 석곽창고

관북리유적 기와깐시설

PHOTO 28 관북리유적 기와깐시설

부소산성 남쪽 관북리에서 연못, 건물터, 배수 시설 등 백제 사비시대 왕궁으로 추정되는 터가 발견되었습니다. 가로35m, 세로18m의 대형건물지는 백제시대 가장 큰 건물터로 아주 중요한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상하수도, 배수시설 등의 흔적이 발견되어 백제가 당시 훌륭한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치 투명한 왕궁을 거닐듯 사람들은 관북리유적지의 너른 잔디밭 길을 거닙니다. 그 웅장하고 아름답던 자랑스러운 왕궁이 언젠가 꼭 복원되길 바랍니다.

정림사지(사적 제301호)

정림사지 5층석탑

PHOTO 50 정림사지 5층석탑

정림사지 5층석탑

PHOTO 51 정림사지 5층석탑

정림사지 5층석탑

PHOTO 52 정림사지 5층석탑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을 두고 많은 이들이 김부식의 삼국사기 중 백제본기의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1500여년의 시간을 간직한 균형잡힌 석탑의 단아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정림사지 발굴과정(정림사지박물관 전시모습)

PHOTO 53 정림사지 발굴과정(정림사지박물관 전시모습)

정림사지 금당과 석불좌상(고려시대)

PHOTO 54 정림사지 금당과 석불좌상(고려시대)

정림사지 금당과 석불좌상(고려시대)

PHOTO 55 정림사지 금당과 석불좌상(고려시대)

정림사지는 사비도성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비시대가 도래하며 불교는 국가 통치 이념이 되었기에 나라 안에는 절과 탑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상징이기도 하여 종교 시설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남에서 북으로 연지-남문-중문-석탑-금당-강당 순으로 배치되어 있고 주변을 회랑이 둘렀습니다. 이는 백제시대 다른 절들과 배치가 비슷합니다.

정림사지 출토초석

PHOTO 56 정림사지 출토초석

정림사지 출토초석

PHOTO 57 정림사지 출토초석

이 절은 1942년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된 '정림사' 라고 쓰인 고려시대 기와 명문으로 인해 당시 정림사로 불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백제시대에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는 알 수 없어 절터는 정림사지, 석탑은 정림사지5층석탑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정림사지박물관 전경

PHOTO 58 정림사지박물관 전경

정림사지 제작과정

PHOTO 59 정림사지 제작과정

정림사지 제작과정

PHOTO 60 정림사지 제작과정

정림사지 근처에는 '정림사지 박물관'이 있습니다. 정림사를 중심으로 백제 사비시대 불교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곳입니다. 땀 흘리며 탑과 절을 짓는 백제인들의 현실감 있는 모습이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어 그들의 불교를 향한 강한 열정과 염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재현된 정림사지 모습

PHOTO 61 재현된 정림사지 모습

재현된 정림사지 모습

PHOTO 62 재현된 정림사지 모습

재현된 정림사지 모습

PHOTO 63 재현된 정림사지 모습

정림사지에 들어서서 보이는 것은 연지와 정림사지 5층석탑, 금당 뿐입니다. 원래 5층석탑만 남아 있었는데 연지와 금당은 복원된 것입니다. 복원된 금당 안에는 소박하고 친근한 모습의 정림사지석조여래좌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좌상은 고려시대의 유물입니다.

정림사지 출토유물

PHOTO 64 정림사지 출토유물

정림사지 출토유물

PHOTO 65 정림사지 출토유물

정림사지 출토유물

PHOTO 66 정림사지 출토유물

정림사지5층석탑은 화려하지만 약했던 목탑과 달리 단단한 화강암을 이용하여 완벽한 비례미와 균형미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이자 온전히 보존된 유일한 백제시대 석탑입니다. 백제인들은 단단한 석탑을 만들며 백제의 영원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사비시대를 마지막으로 백제는 사라졌지만 14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림사지5층석탑은 부여의 중심에 남아 사비를 추억하게 합니다.

능산리고분군

능산리고분군

PHOTO 37 능산리고분군

능산리고분군 7기

PHOTO 38 능산리고분군 7기

능산리고분군 동하총(1호분, 위덕왕릉 추정)

PHOTO 39 능산리고분군 동하총(1호분, 위덕왕릉 추정)

성왕은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습니다. 그랬기에 한성, 웅진시대에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며 도읍 중심에 위치했던 왕릉이 사비시대에 와서는 나성 바깥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이전시대 왕릉이 머물렀을 자리에는 사찰이 들어섰습니다. 사찰이 왕릉의 역할을 대신하며 나성을 경계로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은 나뉘게 된 것입니다. 둥글고 볼록하게 솟은 연둣빛 고분들과 뒤로 짙게 녹음이 우거진 산의 능선, 그리고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광을 이룹니다.

능산리고분군 전시관

PHOTO 40 능산리고분군 전시관

전시관 내부

PHOTO 41 전시관 내부

전시관 내부

PHOTO 42 전시관 내부

금동대향로 모형

PHOTO 43 금동대향로 모형

능산리고분군에는 3기씩 두 줄, 가장 뒤쪽에 1기로 총 7기의 고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이미 도굴되었던지라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사비시대에 왕위에 머물렀던 6명의 왕들이 묻혀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될 뿐입니다. 텅 빈 채 쓸쓸히 발견되었을 왕릉을 생각하니 잃어버린 왕국의 쓸쓸한 왕들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깝고 씁쓸해집니다.

동하총(1호분) 내부벽화 연화비운문도

PHOTO 44 동하총(1호분) 내부벽화 연화비운문도

동하총(1호분) 내부벽화 백호도

PHOTO 45 동하총(1호분) 내부벽화 백호도

고분군의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있는 굴식돌방무덤의 형식을 따릅니다. 가장 오른쪽 아래에 위치한 능산리 1호분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 고분의 네 벽에는 사신도가, 천장에는 구름과 연꽃이 그려져 고구려와의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의자왕과 부여융(의자왕의 아들) 가묘와 제단

PHOTO 46 의자왕과 부여융(의자왕의 아들) 가묘와 제단

더욱 쓸쓸한 무덤 2기가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과 그의 아들 부여융의 무덤입니다. 비록 중국에 묻혔던 무덤의 흙과 묘지석 복제품이지만 당나라로 끌려갔던 의자왕과 그의 아들의 무덤이 1400여년 만에 백제 땅에 안치되었습니다.

능산리사지

PHOTO 47 능산리사지

능산리사지 중문지

PHOTO 48 능산리사지 중문지

배수로를 건너는 석교와 목교

PHOTO 49 배수로를 건너는 석교와 목교

능산리고분군 서쪽에서 능산리사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능산리사지는 백제 사찰에서 주로 보이는 탑과 본당이 일렬로 배치된 1탑 1금당 가람배치의 형식을 띄었습니다. 고분군 곁에 자리하는 것으로 보아 왕과 왕족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던 사찰로 추정됩니다. 이곳에서 백제의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되어 주목받았습니다.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진 백제금동대향로를 통해 당시의 문화, 종교, 사상, 제조 기술 등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비시대 백제인들의 이상세계가 담겨져 있는 화려한 금동대향로의 진품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나성

나성

PHOTO 29 나성

나성

PHOTO 30 나성

나성

PHOTO 31 나성

나성은 외곽성을 이르는 말입니다. 백마강이 두르고 있어 북쪽은 적이 공격해 오더라도 안전하지만 아래쪽의 낮은 산은 방어에 취약할 것을 나성을 쌓아 해결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성은 수도를 보호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성, 웅진시대와 달리 사비시대의 왕릉은 도시 한복판에 있지 않고 왕도의 바깥, 나성 너머에 위치합니다. 왕도의 안과 밖을 나누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나누며 상징적인 경계로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나성

PHOTO 32 나성

나성

PHOTO 33 나성

나성

PHOTO 34 나성

6.3km 길이의 나성은 동아시아 역사상 그 흔적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외곽성이기도 합니다. 이 나성은 지형에 따라 다른 축성방식으로 백제의 훌륭한 축성술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구릉을 통과하는 구간은 점토와 마사토를 다져 쌓은 뒤 바깥을 돌로 쌓았으며, 저습지를 통과하는 구간에는 토양을 다진 후 나뭇가지를 올리고 점토를 다진 후 나뭇가지를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고 말뚝을 박아 더욱 단단하게 하였습니다. 토성과 석성의 장점이 결합된 것입니다. 백제의 축성법은 고구려, 신라, 일본에도 전파되어 영향을 끼쳤습니다.

나성에서 바라본 능산리사지

PHOTO 35 나성에서 바라본 능산리사지

나성에서 바라본 능산리사지

PHOTO 36 나성에서 바라본 능산리사지

나성을 따라 걸어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능산리 사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1500년 전 고인이 된 왕족들의 명복을 빌었던 절의 경건한 분위기와 규모를 상상하며 숨을 고릅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